한국초기 선교사 열전(7) 호레이스 알렌 편

조선 최초의 의료선교사 알렌

First Korean Medical Missionary : Horace N. Allen

우리는 보통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보다 1년 먼저 한국에 온 선교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알렌 박사(Horace N. Allen)이다. 그 당시 선교사 신분으로 ‘미지의 은둔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필사적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1884년 9월 20일 푸트 공사는 천주교금지령 때문에 선교사 신분을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 알렌을 ‘미국공사관부 무급의사' (Physician to the Legation with No Pay)에 임명한 것이다. 그러기에 알렌은 조선행 결행 후, “나는 계략을 써서 조선에 잠입했다.” 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호레이스 알렌, 그는 의료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널리 전파한 인물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척박한 나라에 의료전문인이 선교사로 헌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의료선교라는 강력한 선교의 도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으로써 선교에 헌신한다면 분명히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엄청난 선교 역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의료 선교는 복음이 들어갈 틈새이다. 따라서 의료는 선교적 전략가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의료 전문인들은 선교적 사명을 회복해야 함은 물론, 선교사들은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협력하여 창의적 접근 지역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제 조선 최초의 의료 선교사 알렌에 대해 알아보자. 알렌은 1858년 4월 미국 오하이오 주 웨슬레안 대학 신학부를 거쳐 마이애미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연구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명석한 의사였다. 1883년 박사학위를 받자 곧 F. A. 메신저양과 결혼하고 그해 10월 미국 북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향하였다. 상해에는 이미 영국 런던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후, 알렌 선교사는 1년여 동안 상해와 남경에서 의료선교에 임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기도하던 중 뜻하지 않게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로부터 한국 의료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고, 중국 상해를 떠나 1884년 9월 20일 제물포항에 도착함으로써 한국의 두 번째 선교사가 되었으며 또한, 미국 북장로교회 한국 선교사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1884년 9월 선교를 목적으로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1905년 5월까지 21년간 조선에 머물면서 의료, 선교,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알렌은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을 때 주한 미국 공사관 공의(公醫) 자격으로 입국하였다. 알렌은 머지않아 한국의 두터운 불신앙 벽이 무너질 날이 오리라 믿었고, 하루속히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뜨겁게 기도하였다. 그러던 중 그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12월 4일 갑신정변이 일어난 날 밤, 우정국(郵政局) 개원식에서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알력이 일어났다. 그리고 연회석상에서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나 당시 수구파의 실력자인 민영익이 심한 상처를 입고 생명이 경각에 달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때 민영익이 위급하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전국 한의사들 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용하다는 한의사들은 서로 자신이 치료하겠다고 로비까지 하고 나섰다. 무료로 진료하겠다는 지원자의 수가 무려 600여 명이나 되었다.

심한 상처를 입은 민영익을 고종 황제의 고문인 독일인 몰렌돌프의 추천으로 모든 한의사를 제치고 알렌이 치료하게 되었다. 한편, 알렌은 보통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만일 여기서 실패하는 날에는 한국의 선교가 영원히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렌은 유난히 더 많은 기도를 하면서 민영익을 수술하게 되었다. 정성껏 치료한 결과 3개월이 지나면서 그렇게도 깊었던 상처가 신기하게 아물기 시작하였다. 그의 정성 어린 기도와 의술로 점점 회복이 빨라지면서 그다음해인 1885년 3월에 드디어 민영익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 일로 정부로부터 1,000냥의 사례금까지 받았다 하니 알렌의 역할이 얼마나 컸던가를 잘 알 수 있다.

은혜를 넓게 펼친다-광혜원

하나님께서는 알렌을 통해서 민영익의 상처를 완전히 고쳐 주셨다. 그의 의술은 곧 정부 고관들의 입을 통해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알렌은 이러한 기회를 놓칠세라 미국 대리공사인 푸트를 통해서 서양의술을 펼 수 있는 병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제의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알렌은 궁중의 주치의가 되면서 궁궐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알렌은 이러한 기회를 통해 비록 중국에서는 선교사역에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꼭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준비에 임하였다. 그러던 중 정부로부터 고종 황제의 명으로 광혜원을 하사받게 되었다. 알렌은 그동안 고관들만 치료하면서 수많은 가난한 백성이 병이 생겨도 약 한번 사용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평민을 위한 병원을 하사한다고 하니 그 이상 기쁜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갑신정변 때 개화파 인물로서 보수파에 의해 타살된 홍영식의 집을 수리하여 1885년 4월 10일 드디어 광혜원의 문이 열렸다. 이 일은 한국 선교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알렌의 보고서에 의하면 “1년에 약 300달러 상당의 약품이 소요되었으며, 경상비는 정부에서 담당하며, 돈을 낼 수 없는 이들에게는 약과 치료는 무료였다. 약 40개의 침대를 놓고 공간이 있으면 간이침대라도 놓았다.”라고 했다. 이후에 알렌이 선교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는 병이 생길 때마다 그를 불러 자신들을 치료하도록 하였으며, 황제는 “내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하라.”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한다.

‘은혜를 넓게 펼친다.'라는 뜻의 광혜원은 보름 뒤 ‘대중을 널리 구한다.'라는 뜻의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제중원에서는 인천항을 통해 막 입국한 언더우드가 머물며 우리말을 익히기 시작했고 감리교의 스크랜톤이 6월까지 의사로 활약했다. 1885년 여름에 입국한 미북장로교 의사인 헤론이나 1886년 여자 의사로 처음 들어온 엘러즈도 이곳에서 활동 근거를 얻었다.

이렇게 병원을 개원한 지 얼마 안 되어 미국 감리교회의 스크랜톤, 장로 교회의 헤론 선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1만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였다. 이 중에는 장티푸스, 천연두, 이질, 폐결핵, 매독, 한센병 등 악성병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궁중의 관리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알렌 선교사의 기도로 이루어졌던 광혜원을 국가가 건립했다 하여 오늘날 서울대학병원의 출발을 1885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후에 제중원, 다시 세브란스 병원으로 개명하면서 연희대학교와 합병을 하게 되었다. 이 일로 연세 대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병원이라 부르면서 그 시작을 서울대학병원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의과대학이었으며 이는 알렌의 활동에 힘입은 것으로 그 뒤에 많은 선교사가 한국에 와 선교활동을 하는 발판이 되었다.

선교사 사이의 불화

이러한 성공적인 선교 활동 이면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갈등도 있었다. 알렌은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자제하고 의료선교에 주력하려는 반면, 언더우드 등은 교육선교를 통해 복음전도에 주력하려 하였다. 이에 자연히 양측 사이에는 불화가 있었고, 당시 알렌은 중국에서의 선교경험도 있고 왕실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에 선교사 사이에서 대부로서 군림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러한 불편한 관계로 말미암아 서로 사생활을 비난하고 급기야 상대방을 헐뜯는 보고서를 본국 선교본부에 보내기도 했는데 알렌에게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지나치게 사치스럽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반면 알렌은 언더우드, 헤론 등의 선교사를 가리켜 “일을 회피하며 병이 만연한대도 테니스를 즐기며 휴가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헤론 부인은 알렌을 가리켜 기독교의 사랑이 없는 “선교사로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했는가 하면 알렌은 언더우드를 가리켜 “위선자요 수다쟁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선교관은 결국 알렌이 선교사의 임무를 떠나 외교관으로 전향하고, 한국의 선교는 언더우드를 비롯한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주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알렌이 민영익이 중심인 친수구파의 입장이었던 점에 반해 언더우드 등은 친개화파의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선교사간의 정치적 역학관계의 입장이 또한, 이들의 불화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 당시 알렌, 언더우드, 헤론, 스크랜톤 등 초기에 입국한 장로교계 선교사의 나이는 모두 20대의 젊은이였고, 알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한국이 선교의 초임지였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는 지나친 경쟁심과 인간적인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약한 모습 속에서도 각자의 분명한 사명이 있었기에 이들의 공로로 복음의 불모지였던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수 있었고, 이들이 뿌린 씨앗은 싹이 나고 자라나 지금의 열매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조선 최초의 의료 선교사 알렌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았다. 또한, 의료선교라는 특수성에 비롯한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약함이 결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대 파노라마인 선교에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다만, 우리가 선교에 대한 각자의 사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다른 부분들은 더욱 큰 그림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 글이 한국의 의료인들에게 세계복음화를 향한 거룩한 사명을 고취하고, 한국 모임이 의료 선교라는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여는 데 쓰임 받기를 바라며 마친다.

이 종 수 (서울북부교회)

참고 서적:

선교타임즈 2000년 5월호 “알렌과 의료선교”

그 말씀 1996년 7월호 “교회사 산책-알렌의 의료선교” 박명수

한국 초기 선교사들의 이야기, 김수진 저, 한국장로교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