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시대-1990년대

 
1990년 8월 14일(화)-18일(토) 오전까지 싱가폴 앙모교모임 주최로 한국 68명, 일본 114명, 말레시아 46명, 사바 7명, 싱가폴 50명, 홍콩 9명, 대만 4명, 필리핀 4명, 미국에서 CMML의 사무엘 로빈손 형제님 등 형제 자매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주 강사는 홍콩 선교사 에이킨을 비롯하여 좋은 말씀의 교제를 통하여 형제 사랑을 확인하는 동시에 많은 유익된 것들을 얻어 믿음생활을 하는데 비전을 제시받고 돌아왔습니다.
미국인 형제 사무엘 로빈손은 특별히 초청받아 미국CMML 선교봉사 단체로서의 역할을 설명하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선교활동 단체가 필요한가?
A. 여러 모임의 독립성
B. 정보보급
① 기도에 관한 권면
② 경제적인 것에 관한 권면
③ 개인적인 것에 관한 권면
C. 발송물의 중계자로서의 사역
① 선교사에게 보내는 발송물을 취급
② 송금 영수증발급
D. 정부의 요구를 채워준다.
① 각종 증명서 발급

2. 선교활동 단체란 무엇인가?
A. 그것은 위원회나 사회가 아니다.
① 선교사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다.
② 선교를 위해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③ 선교사의 교육-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④ 선교사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
⑤ 선교사를 파송하여 보내는 것이 아니다.
⑥ 선교사를 감독, 지도하는 것이 아니다.
⑦ 선교사를 경제적으로 돕거나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⑧ 선교사를 바꾸거나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⑨ 선교사를 퇴역시키는 것이 아니다.
⑩ 선교사에게 봉사를 시키는 것이 아니다.
B. 그것은 단지 봉사를 하는 단체이다.
① 여러 가지 위임 받은 것 중에서 여러 모임이 할 수 없는 봉사를 공급한다.
C. 믿음의 사역이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현재까지 문제없이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공감대를 얻었으며, 현재는 더욱 간편한 편입니다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성서적으로 반하는 단체가 아니므로 반대할 필요가 없고, 만일 한국모임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현지에 진출하게 될 때는 이와 같은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주님의 축복 가운데 싱가폴 그리스도인 연합집회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 형제자매님들 중에서 20여명은 돌아오는 길에 태국 푸켓에 있는 모임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모임에는 노 선교사인 아놀드 크라크 부부가 수십 년간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 선교사들과 영국 출신인 피터 훼리 형제님 가족도 함께 동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형제자매님 일행 20여명이 함께 참석하므로 분위기는 고조됐으나, 마침 피터 훼리 부부는 부재중이었습니다.
태국 형제자매님들 20여명과 함께 대접을 받으며 교제를 하였습니다. 아놀드 크라크 선교사가 말하기를 이 모임의 역사가 얼마나 된 것을 알려줄 증표로는 이 기둥시계라며 가리켰는데, “1910년 기증”이라고 써있는 시계였습니다. 당시 왕이 즉위하여 태국내 기독교회에 감사표시로 하사하였다고 하는데, 교회들이 태국 사회에 행한 선한 봉사에 대해 감사하여 기증한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모임이 80년 이상 된 모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만, 과연 그동안 얼마나 역사를 하였는지를 새삼 돌이켜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현재 푸켓모임 외에는 세워진 모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선교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으며, 피터훼리 형제님이 며칠 전 싱가폴 그리스도인 연합집회에서 태국 대표로 선교보고를 곁 드려 간증한대로 17년간 한 영혼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간증을 들은 바도 있고 해서 놀라지 않았으나 그들의 인내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부터는 뉴질랜드에서 온 젊은 선교사가 부족(部族) 사회에 뛰어들어 그들에게 전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많은 열매를 맺게 역사하고 있다는 간증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선교사가 해외에 진출하지 않은 때입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인정할 만한 초청장이 있으면 여권을 받는데 좀 수월해졌습니다. 일본 모임에서는 군마껭 다까사끼 모임에서 수양관을 운영하던 재단법인인 이카호 성서 수양관 도끼쇼- 이사장의 명의로 공증을 하여 초청장을 보내주면 전심사역자에 한해서는 가능하므로 저희 일행은 홍콩에 들러 취웨완 모임과 출판사를 살펴보았는데, 많은 출판물을 비매품으로 중국대륙에 공급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찬 예배 때 떡과 잔이 돌아가는데 떡과 잔을 뒷자리로부터 돌려서 마지막으로 잔을 마신 분은 앞자리에 앉은 그 모임을 개척한 선교사부부가 받는 것을 보고 새로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싱가폴 그리스도인 연합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비용으로 두 나라의 상황과 많은 견문을 얻게 되었습니다.
1990년 여름 수교가 맺어지게 될 즈음에 A국에서 특히 동부지방의 조선족들이 고국 방문을 명분으로 많은 약품을 가지고와 한 때 재미를 보았으나, 약품이 조잡하고 비싸게 판매되어 좋지 않다는 평이 돌아서 아는 사람이 팔아주지 않는 이상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때 A국 흑룡강성에서 젊은 K씨가 여수에 있는 고모 집에 빚을 내서 약품을 사가지고 왔으나 팔지 못하여 실의에 빠졌을 때, 여수모임의 Ch형제님과 K형제님이 모임으로 인도하여 전해준 복음을 듣고 K씨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광주 광산모임의 N형제님은 A국의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였고, K형제님은 그동안 A국에 관하여 알고자 우선 여수에서 구원을 받은 조선족 K형제님과 광주광산 모임에서 간증집회를 열어 A국에 대한 사정과 간증으로 A국의 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K형제님과 N형제님은 A국에 가서 전도하라고 조선족인 K형제님을 권했습니다.
1991년도 8월 A국에 가서 전도를 개시하였으며 다음해에도 갔습니다. K형제님의 동생 K씨가 한국의 경기도에서 구원을 받고 돈을 좀 벌려고 하였으나 신장결석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에서 92년도에 S형제님과 L형제님이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한편 A국 흑룡강성 H시에서 세 사람의 부녀들이 서울 어느 교회로 와서 여러 날에 듣던 중 어느 자매님을 알게 되었으며, 동대문 교회로 인도를 받아 세 사람 모두가 구원을 받아 기뻐하면서 모임생활을 하다가, 몇 개월 일을 하고 얼마간의 돈을 벌고 가족들에게 전도가 우선이라 하여 돌아갔습니다. 그런 동기로 동대문 모임 K형제님(현 시카고 모임사역자)이 A국에 가서 전도하였고, 92년 노량진 Ch형제님과 동대문 S자매님 등이 방문선교를 시작하면서 몇 차례 왕래를 하였습니다.

그후에 노량진 모임의 C형제가 93년 여름에 A국에 들어가 혼자서 S역에서 열차를 타고 H역에 저녁에 도착하여 보니 경기도에서 구원받은 K형제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따리에 책자와 옷을 잔뜩 들고 있는 본인에게 다가와 여관으로 안내하겠다느니 차를 타지 않겠냐면서 대단히 귀찮게 했습니다. 이 나라 친구가 오기로 되어서 기다린다고 하면 물러섰다가 다른 사람이 안내한다고 합니다. 날이 어두워 갑니다. 기다려야 소용없겠다고 판단하여 길 건너편을 보니 호텔이 있었습니다. 짐꾼을 불러 호텔로 가서 우선 전화를 해보니 마중을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본 적은 없으나 한국에 다녀간바 있는 Y자매님을 전화로 찾으니 조금 후에 아들과 함께 택시로 역시 한국을 다녀간바 있는 O자매님께로 안내해 줬습니다. H시에는 8,9명 정도의 자매님과 한 분의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C형제는 어느 부분을 원하느냐 물으니 요한계시록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7,8일 후 올 터이니 그 때 만나자하고 하루 밤 자고 다음날 마중 나오기로 했던 형제님 집으로 기차를 타고 갔더니 자기는 서울에 서울역과 청량리역이 있듯이 다른 역에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왔다고 하니 어머님이 이모 댁에 안내해서 기차를 타고 10시간쯤 가서 그곳에서 전도를 하고 약속한대로 H시로 돌아와 일주일간 아침 10시부터 오전과 점심 후 오후 4시정도까지 말씀의 교제를 하였는데 4시가 되어 그만 하자고 해도 좀더 해줬으면 할 정도여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A국에는 그 후에도 노량진 모임의 두 분의 C형제님과 K형제님 그리고 지방의 C형제님이 여러 곳을 순방하며 복음을 전했으며, 그 외의 여러분들이 현재까지 방문선교와 여러 곳에 체류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역사는 대단합니다(보안상의 문제로 약자로 하였습니다).
5월 중순 지복흥 형제와 한혜동 형제는 서울을 떠나 일본을 경유 홍콩에서 영국런던을 거쳐 북아일랜 주제 : “사람들이 변화 받는 교회가 되려면”
기간 : 1992년 8월 12일(수) - 15일(토)
장소 : 올림픽 프라자
주최 : 서울의 일곱 모임 - 노량진, 서대문, 봉천동, 동대문, 은평, 잠실, 구로
참가국 : 일본, 싱가폴,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미얀마, 뉴질랜드, 미국, 대만, 한국
사용국어 :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주강사 : O.J. 깁슨
주 강사는 4시간을 감당했습니다.
1. 제자를 삼는 비전을 갖자
2. 성경반을 효과적으로 운영하자
3. 제자를 삼는 방법을 배우자
4. 추수 밭에 보낼 일꾼을 세우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7,38)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

결론으로 일꾼들이 당신의 모임의 장래성장을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고, 다른 지역모임 개척을 위해 누구를 보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가? 그렇지 않으면 해외선교로 전 세계에 걸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주님의 비전을 가진 모임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강사 중의 한분인 일본의 기다노 오사무 형제님은「말씀의 발전과 교회의 축복」이란 제목으로, “왜 발전할 필요가 있는가?”
말씀 ①구도자 : 복음의 말씀에 의해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막16:15, 딤전2:4).
②믿는자 : ⓐ영적 성장의 양식이며 또 건전한 모임확립의 기초가 된다(벧전2:4-9).
ⓑ하늘에 영접되었을 때 보상과 축복의 계약이 된다(엡4:14,15, 계10:7).
또 다른 강사중의 한분인 싱가폴의 피터 위 형제님은 「신약교회의 원리와 양상」이란 제목으로, “실행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절대로 필요하다”고 증거했고, 다른 강사 중 한분인 웡산토쉬 형제님은 「신약원리에 대한 도전과 해결책」이란 제목으로,
도전① 성령의 사역(고전12:14, 엡4:11)
도전② 여자의 역할과 머리수건(고전11장, 딤전2장)
도전③ 헌금(재정)(고전16장)
도전④ 성도들을 돌봄, 목회의 취약점은 목회의 분야라는 것에 대해 증거해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신약교회의 원리와 실행을 계속하게 되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풍성하게 축복해 주시며 모임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여전히 보게 될 것이고, 따라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런 일들을 계속해 나가자'(딤후 3:10,11,14)는 것이었습니다.
참석자 410명이 한 마음으로 진행하여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을 했으며 특히 좌담회에서 질문을 많이 받고 한국 젊은 형제님들이 합당한 질문들을 제시하여 주님에 대한 열의와 패기를 보여주는 좋은 모임이 되었습니다.

1992년 8월 15일(토) 오전시간에 모두 마치고 귀국길에 오를 분은 오르고 여러지역 모임으로 분산하여 예배와 교제를 가졌습니다.
일시 : 1997년 8월 12일-16일
주강사 : 보이드 니콜스 형제님(캐나다)
말씀주제 : 1. 최고의 예배를 굳게 잡아라
2. 순전한 동기를 굳게 잡아라
3. 복스러운 소망을 굳게 잡아라
메세지1 “내 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요 21:15-17) 미와 게이다 형제(일본)
메세지2 “거룩한 제사직분 왕같은 제사직분(벧전 2:5-9) 후아 형제(대만)
메세지3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김종만 형제(한국)
메세지4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꾸준하게 하자”(행2:42) 크루운수 형제(싱가폴)
그 외에 워크샵을 진행하여 발전적인 다양한 교제를 가졌습니다. 각국에서 399명이 참석하여 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회비는 무료로 제공하였으며 싱가폴 앙모교 모임 형제자매님들의 헌신과 봉사에 모두가 감동을 받는 수양회였습니다.
2000년 국제수양회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국제 수양회는 1987년 대만에서 시작하여, 1988년 한국, 1989년 일본, 1990년 싱가폴, 1992년 한국, 1997년 싱가폴에 이어 아시아 지역과 미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210여명의 성도들이 참석하여 피차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라는 것과 선교에 대한 정보와 사명을 갖게 하는 놀라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있었던 이번 수양회에는 한국과 호주, 캄보디아, 피지,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뉴질랜드, 파키스탄, 파퓨뉴기아, 필리핀, 싱가폴, 스리랑카, 대만, 태국 그리고 베트남이 참석 하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교제와 네트웍을 위하여” 였으며 강사는 스코틀랜드의 죤 레녹스(John Lennox) 형제님과 인도의 조지 도우슨(George Dawson)형제님이셨고, 노량진교회의 구학모형제의 인솔로 한국에서는 27명의 성도가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수양회 참석 전에 말레이시아의 여러 곳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코타 키나바루 섬에 다니엘 수 형제님이 경영하는 빅토리아 호텔에서 첫날을 보내었습니다. 그곳은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바루 산이 있는 세계적 명소이지만 무엇보다 성도의 영접을 받는 일은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다음날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페낭 섬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2박 3일간 주 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일찍부터 섬긴 노 성도님들은 한국모임의 초기의 사랑을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너무나 감사하셨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짧은 모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여개 모임이 세워졌다는 말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의해 지배를 받아오던 나라이므로 대부분 영어로 소통하며 약 150명의 성도가(중국계) 초대교회 모양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오랜 교회역사의 성숙한 모습으로 성도에 대한 합당한 예절과 주님 안의 넘치는 사랑을 2박 3일 동안 받은 후 쿠알라룸푸르 이스틴호텔로 옮겨서 5박 6일의 수양회에 참석하게 되며 말씀의 교제와 각국의 사역보고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성도의 놀라운 교제의 시간들을 갖게 되며 박준형 형제님은 영어로 말씀을 보시고 한국모임의 사역보고를 하셨습니다.
통역에는 북부의 황웅재 형제님, 대봉동의 라기태 형제님, 노량진의 송재호 형제님 등이 수고를 하였습니다. 모든 한국 성도들은 입을 모아 성도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귀한 시간들이었다고 간증을 하였으며, 작은 천국을 체험했다고 말했습니다.
1992년 한국 모임에서는 처음 정식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시대가 돌입하게 되어, 김선호 형제님 명화(주은,주리,익찬)자매님을 태국으로 북부모임에서는 파송합니다. 김선호 형제님은 북부지방인 치앙마이에 자리를 잡고, 우선 몇 년간 언어를 배웠습니다. 얼마 후 이웃집에 사는 침례교 선교사 중국계 태국인 하영생 형제님(당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함)을 알게 되었으며 그를 한국으로 인도하여 북부 모임을 비롯하여 여러 모임을 방문하여 사랑과 교회 진리가 어떠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라는 질문에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와 곧 구원의 확신을 갖고, 변화를 받게 되어 참 좋은 동역자가 되었으며, 김선호 형제님은 전도에 매진하였습니다. 치앙마이는 특히 중국계가 많이 살고 있으므로 하영생 형제님 가족들을 위시하여 많은 열매가 맺혀지고 큰 역사가 일어나 태국인들로 구원을 받아 쉽게 모임을 이뤄 현재 세곳에 모임을 개척하였습니다.
A국에 관하여는 보안상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앞서 시작을 하게 된 것을 약간 언급을 하겠습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많은 분들이 말로 자랑을 하지 않지만 특히 A국은 13억이란 엄청난 영혼들이 있는 대국입니다. 130년전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나 영상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주의 명령을 받게 될 때 우선 이웃나라인 A국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도하고자 하는 형제, 자매님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방문 선교나 실제적으로 물질로 선교에 도움을 주는 형제, 자매님들이 많고, 크게 역사를 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고난을 무릅쓰고 수고하는 일꾼들이 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국에 외서 구원을 받고 돌아간 A국 사람들이 여러 곳에 있으므로 그들을 돌볼 일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캄보디아에 1994년 김한식 형제님과 곽경덕 자매님(유진, 유미)부부를 파송하여 내란에 소용돌이 속에서 잘 극복하여 정부나 현지인들에게 인정을 받아 기술학교(봉재, 영어, 한국어)를 개설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모임을 세워 지금은 40~50명의 모임으로 성장하였음)정부로부터 전국 시. 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도 된다는 허가를 받고 자유로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직접보고 돌아왔습니다. 1997년에 조동현 형제님, 이은진 자매님(은비,은솔) 가정을 성남수정모임에서 파송 하였으며 먼저 언어를 배우면서 김한식 형제님을 도우며 동역의 수고를 하다가 선교지를 앙코르와트 근처인 씨엠리업으로 옮겨 그곳에서 모임을 형성하여 활동하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1996년에 노량진모임에서는 박영신자매님을 캄보디아로 파송하였습니다. 수년간 수고하고 고생을 하였으나 어린이를 위한 사회복지 차원의 선교를 원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며 독신의 한계를 느껴서 철수를 하였습니다. 매우 안타깝게 생각을 하며, 기도가 부족하였음을 반성을 해봅니다.
1997년 이현웅 형제님, 이은숙 자매님(지연, 호연)가정이 네팔-카투만두에 도착하고 난 몇 달 후에 1997년 싱가폴 그리스도인 수양회에 참석하고, 당시 인도에 파송된 선교지와 네팔 선교지와 인도 모임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김종만 형제님 부부, 임종원형제님 부부, 도정률 형제님, 김철회 형제님, 지복흥 형제 칠인이 먼저 인도 남단인 게라라주 고친을 중심으로 내한한바 있는 존 쿠리안 형제님이 속한 모임과 고친 모임, 그리고 모임에서 운영하는 병원, 학교를 둘러보고 많은 감명을 받은 몇 가지 이유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들이 주님사랑으로 운영하는 면과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학교는 유치부, 초등학교, 중등-고등부를 영어로만 가르치고 학생들이 유명한 학교를 진학한다는 사실과 인도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좋은 학교를 운영하여 그곳 출신들 가운데 훌륭한 전심 사역자들이 그 학교 출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잘되고 교사들의 품위와 인격은 영국 신사들 같이 보였으며, 요즘 같은 시대의 어린아이들을 외국에 일찍이 보내는 이 때,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는 인도 방골라시에 있는 이 학교로 유학을 보내도 괜찮다고 봅니다.
인도 모임의 숫자는 약 1300여개, 전심 사역자들이 700여명이 넘는데 주님을 위해서 형제님들이 수십 불의 궁핍한 생활비로 복음을 위해 일을 하는 광경은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후 인도 뉴델리에 파송된 장관호 형제님이 사역하는 곳을 찾아가 격려와 위로를 나누었습니다. 형제님은 대학생들에게 전도하여 학생들이 구원을 받아 모이고 있었으며 더위에 종일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견뎌낼 수 없어서, 현재는 아내와 자녀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장관호 형제님은 방침을 바꿔 철수하여 때때로 방문선교로 인도 대학생들을 돕고 있는 형편입니다. 뉴델리에 있는 모임은 남쪽인 게라라 출신들이 이곳에 와서 전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 이외에 파송된 것에 관하여는 지면관계로 열린문 자료에 의하여 알아보도록

네팔선교
쫊 연도별 파송선교사
파송년도│파송모임│선교사│개척모임│비고
1997년/충주모임/이현웅, 은숙(지연, 호연)/카투만두 모임
2001년/대전대덕모임/최근민, 상숙(지환)/호텔사업
필리핀선교
쫊 연도별 파송선교사
파송년도│파송모임│선교사│개척모임│비고
1994년/광주동부/이원재, 여순(평안, 주영, 대은)/세부모임
2002년/광주남부/문일호, 희정(예진, 효식, 효진)
2003년/진주모임/심동식, 단아(애녹, 애향, 다현)
몽골선교
쫊 연도별 파송선교사
파송년도│파송모임│선교사│개척모임│비고
1997년/서울관악모임/정광원, 미숙(이레, 진호, 에스더)
베트남선교
쫊 연도별 파송선교사
파송년도│파송모임│선교사│개척모임│비고
서대문모임/김상용, 현희(쟌폴, 열문길, 하림)
호주선교
쫊 연도별 파송선교사
파송년도│파송모임│선교사│개척모임│비고
2000년/대구남부모임/이강일, 혜정(예찬, 예원)
1996년 차광선, 김덕영, 배영호 가정 외 형제자매님들이 주님의 부르심으로 상계동에서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차광선 형제님은 서울시 공무원(동대문 구청)으로 6여년 근무하다가 상계 지역에 모임이 없음을 보고 개척을 위해 모임에 기도 요청을 한 바 있습니다. 차광선 형제님 집에서 구역집회로 모였으며 상계동에 사는 김덕영 형제님 집에서도 구역집회를 가지다가 노량진 모임에서 천거를 받아 시작하여 상계동에서 지금까지 영혼 구원을 위해 수고한 결과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 모임에 더해졌으며 지금은 안정된 가운데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1996년에 충남서산이 고향인 김남복 형제님 아우로 노량진 모임에서 구원받은 김남일 형제님이 결혼하여 부인과 유은식 형제님 가정과 서산지역을 위해서 모임을 시작하여 그곳 믿음의 식구들이 더해졌으며 유은식 형제님 가정과 김남일 형제님 가족을 중심으로 주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1997년 1월 5일부로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인천지역에 살면서 노량진으로 나오시는 성도님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문성진-왕경숙 부부, 이경근-허영순 부부, 권영수-구순모 부부, 최연자 자매 7명과 형제자매님들이 매주 목요일 구역 성경공부로 모이기를 시작하면서 모임개척을 시작한 성도를 중심으로 10명이 캄보디아 선교지를 방문 하고난 후 인천 연수 지역 영혼들을 위해 개척의 부르심을 받아 1996년 6월 개척을 개시할 것을 권한바 순종하였으며, 인천지역에 거주하시던 김주달 형제님 가정(북부모임)을 포함하여 노량진 모임에서 천거를 하였으며, 1997년 1월 5일 첫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개척한 이래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특히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전도로 크게 쓰임을 받는 모임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1998년 2월 최재준 형제님 가정과 민태홍 형제님(소천) 가정의 형제 자매님들과 서대문에서 주님을 섬기시던 김진영 형제님 가정(여러 식구)이 왕십리로 부르심을 받아 지금까지 주님의 축복가운데 모임이 성장해 가고 있음을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최재준 형제님과 부인되는 이정인 자매님은 오랫 동안 노량진 모임에서 성실하게 주님을 섬기시던 중에 그 곳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좋은 동역자이신 김진영 형제님의 여러 식구들은 주님을 성실하게 섬기는 가정인데 함께 하시므로 좋은 소식이 들려 와 주님 안에서 감사가 되고 있습니다.
1999년 8월 김남복 형제님 가정을 중심으로 사당동 지역을 위해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김남복 형제님은 청년 사역을 위해(C.B.F) 오랫 동안 수고하고 있습니다. 형제님은 오래전부터 교사와 교목(겸직)의 안정된 생활을 마다하고 주님을 위해서 전심으로 일을 하고자 하여 노량진 모임에서 많은 수고를 하다가 수십 명의 형제자매님들과 구도자 수명이 남서울 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당지역에 남서울 모임을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모임에서는 기쁨으로 천거하였습니다. 김남복 형제님은 부모님의 병환으로 오랫 동안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조금도 내색함이 없이 주님의 사역을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 복 흥(노량진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