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예”, “예수님이 부르고 계셔?”, “예, 예”. 이것이 아내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잘 다녀와”라고 속으로 외쳤다. 암의 진통도 장폐색의 고통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오카모토 카즈요(岡本 和代). 2003년 5월 10일 오후 5시 23분. 향년 54세. 사인은 진행성 췌장암에 의한 간질성(間質性) 폐렴.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주님의 품안으로 들려올라간 그날, 그때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슬픔은 가시지 않고, 마음 한가운데 커다란 공백을 느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내를 위해서인가. 아니다. 아내는 자신의 기억을 남기기를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분명 쓰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쓰는가. 촛불은 다 타들어가 막 꺼지려고 하는 그 순간 가장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고 한다. 한명의 이름도 없고 보잘 것없는 성도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을 발하게 하셨는지를 형제자매님들께 보고드리고 싶다. 그리고, 믿음의 좋은 파트너로써, 모범적인 선배 그리스도인으로써, 가장 적절한 충고자로써의 아내에게서 배운 뜨거운 그 믿음을 아직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을 때에, 마음에 새겨놓고 싶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주님은 아담에게 유일하게 하와만을 만들어 주셨다. 이처럼, 나에게 있어서 최고이며, 가장 사랑스런 아내였다. 때때로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게 아니냐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한 남편의 아내자랑으로 가볍게 웃어 넘기시면 고맙겠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내 몸과 마음이 다 사그라져도),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6) 암을 선고받고 작년 12월 13일, 집에서 구도자를 위한 가정집회를 열던 날, 아내가 격렬한 복통을 호소해서, 병원을 향하게 되었다. 진단결과는 장폐색, 즉각 입원해야했다. 얼마간 입원해있으면 좋아지리라고 여겼지만, 좋아지기는 커녕 악화일로였다. 새해가 밝자마자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는, 난소암의 징후가 농후하여 가능한한 빨리 적출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입원해있던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기 때문에 병원을 옮겼다. 그 병원에서도 진찰후 즉시 입원했고, 바로 다음날로 수술일이 잡혔다. 수술에 관한 모든 준비도 끝나고, 형제자매님들에게 수술이 무사히 성공할 수 있도록 전화로 기도요청을 했다. 나쁜 곳만 잘라내면 낫는다.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저녁무렵, 담당의사가 부르더니 이렇게 선고하는 것이었다.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진행성 췌장암입니다.” 갑자기,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지나갔다. 나는 의사에게 아내에게 있는 그대로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고,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기에 암이라고 선고를 받아도 괜찮다고 부탁했다. 의사선생님은 잠시 주저했지만, 승낙했다. 몇 명의 의사가 와서는 아내에게 상세한 증상을 설명했다. “장폐색의 원인은 난소암이라고 생각했는데, CT를 재검토해본 결과, 췌장암이 장을 압박하여 장폐색이 발생된 것입니다. 이대로 두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3개월정도입니다.” “어머, 그럼 이제 죽을 때까지 정말 아무 것도 못먹는 거예요? 아이참 그러면 너무 괴로운데. 하하하하”. 의사들도 자기도 모르게 함께 따라 웃어버렸다. 아내는 그런 심각한 분위기에서, 암이라고 선고를 받아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의 아내의 깊은 심리상태는 알 수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주님 손에 붙들려 있었음에 틀림없다. 병실을 전도의 장으로 “남겨진 시간은 3개월”.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질만한 의사의 선고를 아내는 “피할 곳이 없는 하나님의 의지”로 받아들였다. 얼마되지 않는 남겨진 시간에 주님은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음성을 기도로 구했다. 수술이 불가능하기에 화학요법을 시작했지만, 암의 진행속도는 빨랐고, 아픔은 날로 격해갔다. 복부는 임산부처럼 탱탱하게 부풀어올랐다. 아침무렵의 조용한 시간에는, 친구들에게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감사와 믿음을 촉구하는 편지를 썼고, 낮부터는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20년만에 만난 사람도 있었다. 멀리서는 동경(東京)에서 신깐센(新幹線)을 타고 달려온 사람도 있고, 직장동료, 근처 이웃, 아이들 학교의 친구들, 모임에 나오고 있는 구도자 등등. 몇번이나 거듭 찾아온 분도 있고, 성경을 읽어보고 싶다거나, 모임에 가보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모임의 형매님을 비롯하여 다른 모임의 많은 형매님께서 격려하기 위해 방문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병실은 언제나 방문객이 끊기질 않았고, 아내의 웃음소리는 복도에까지 흘러나와 울려퍼졌다. 때때로 격렬한 진통이 엄습하여 말하기 어려운 적도 있었지만,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아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분위기는 한층 밝아지며, 자연스레 이야기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으로 이어진다. 이는 주님께서 아내에게 주신 은사라 해도 좋을듯하다. 손님과 헤어질 때에는 “그럼 다음에는 천국에서 만나요. 하하하하”. 아내는 방문객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다. 회진온 의사에게 자기가 죽으면 소천기념식에 꼭 와달라고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면서 “환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은 처음입니다”라며, 주위에 있는 젊은 간호사들에게 “자네들도 이런 환자가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해 두게나”라고 했다. 아내는 입원실이 개인병실임을 활용하여 비디오와 빔프로잭트를 사용하여 영화시사회를 간호사들을 위해 기획했다. 간호사들도 참가하고 싶다고 했지만, 도중에 교대된 간호사장은 근무에 지장이 될 수 있으니 그만두라고 해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소천기념식에 의사 2명, 간호사 4명이 참석했다. 이처럼 병실은 “더이상 피할 곳이 없는 하나님의 의지”를 이루기 위한 아내에게 남겨진 길이었다. 다시한번 예배를 드리러 암선고를 받은 때부터, 한 번만이라도 다시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있기를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했다. 입원초기는 아픔이 날로 심해졌고, 인간적으로 예배참석은 꿈도 못 꿀 상태였지만, 2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진통제의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증세도 안정되었다. 그리고 3월말에는 외박도 가능케 되었다. 4월 6일, 일요일, 실로 4개월만에 예배에 참예할 수 있었다. 장폐색 때문에 전혀 음식을 취할 수 없어서 링겔주사를 24시간 꽂고 있었다. 이 링겔지지대를 밀고 모임에 들어섰을 때, 형매님들은 크나큰 감동과 기쁨에 휩싸였다. 한국의 정모친님은 “우리나라에서도 링겔지지대를 끌고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며 기뻐하셨다. 떡을 떼고, 보고와 말씀듣는 2시간을 한번도 눕지 않고 형매님들과 함께 의자에 앉아서 보냈다. 입원중에는 병실에서 예배를 녹음해온 테잎을 들으면서 혼자서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예배에 함께 할 수 있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들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4주간이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예배에 함께 참예할 수 있었다. 홀 한구석에서 자그마하게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며 찬송하고 있던 아내는 매우 기품있게 보였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의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때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천국은 예배드리는 자들의 모임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겠는가.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이고, 기품이 있는 것인지. 이 모습이 땅에서 본 아내의 마지막 예배의 모습이었다. 이별의 캠프 이렇게 주말 외박을 하다가 이제 재택요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5월 4, 5일 예정되어있는 1박 2일의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4월 30일 퇴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캠프 당일은 몸상태가 악화되어 참가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캠프장까지 장시간 자동차를 타고가야 하는데 불안했고, 몸 상태가 더 악화되어 만약 캠프장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찌하나라는 등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가기로 했다. 이 결정이 아내의 죽음을 앞당겼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자기자신보다도 형매님들이 즐겁고, 격려가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아내의 기쁨이었다. 캠프장에서 밤늦도록 교제를 나누었다. 집회 이외의 시간에는 누워서 모두와 교제했다. 아내가 있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밝아졌고, 즐거움은 더해진다. 커다란 웃음소리로 모두를 품고, 고민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일처럼 괴로워한다. 모임의 모두는 그런 아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내의 참석은 모임 전체의 기쁨이었다. 앞으로도 끝없이. 참가한 전원이 캠프를 즐겼다. 다음주에는 아내가 더이상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채. 주님은 모임의 형매님들과 풍성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송별회를 열어주신 것이다. 주님 품안으로 캠프에서 돌아온지 이틀 후인 수요일, 갑자기 악화되어 폐렴이 발병하여 긴급입원했다. 산소 포화도(飽和度)는 60(보통은 100, 90만 되어도 괴로운 상태). 맥박은 140. 보통 인간이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려 4일간, 아내는 살았다. X-레이를 통해 본 아내의 폐는 새하얗다. 그렇지만, 한마디의 괴로움도,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위문 온 분들에게 말을 걸었다. 위문온 손님들이 차마 보기에 안타까워 오히려 말을 그만두게 해야했다. 솔직히 대단하다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얼마나 놀라운 아내와 함께 해왔었는가 다시한번 주님께 감사드렸다. 10일 토요일, 오후 5시경,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심하게 기침을 하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의사로부터 임종이 가까웠다고 전해들었다. 30분정도의 고통후에 아내는 주님의 품으로 부르심받아 떠났다. 욥의 믿음 평상시 아내는 유쾌하고, 명랑하며, 배려깊은 사람이었다. 잘 웃었다. 가족들에게는 화를 잘 내었다. 누구에게도 아첨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혼한 이래 아내로부터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아내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인가? 아내가 병원에서 쓴 메모를 소개한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들은 성경동호회의 성경메세지, 그것은 주권자,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을 믿는 욥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떠받치고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주권자되신 분을 인정하고, 이분을 자랑하며, 이 존경해마지아니하는 분을 기뻐하는 저를, 주님께서 있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하나님 존전에서 피할 곳이 없는 하나님의 의지를 깨달았을 때, 저에게 역시 그분은 주권자이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하십니다. 저의 평생에 한없이 이분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이 주권자로 말미암은 사랑의 선물. 감사드립니다.” “피할 곳이 없는 하나님의 의지”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지를,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믿음이란, 주님은 언제나 절대자이시요,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하여, 주님이 주이시다!라는 너무나도 단순한 것을 있는 그대로 끝까지 믿는 것이다. 다른 글에서는 “내 자신에 관련된 것들은 그다지 남겨두고 싶지 않다. 아니, 전부 없애버리고 싶은 심정이 더 강하다. 구원받았을 때, 오랫동안 써왔던 일기를 불에 태워 처분하고, 이 세상과 결별했을 때가 떠오른다. 지금도 같은 심경이 마음을 뒤흔든다.”고 썼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부인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결별이기도 했다. 아내는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가 보다, 누가 무엇을 위해 구해주셨는가를 항상 의식하고 살았다. 아내는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님을 경배하는 것,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고, 일상생활을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아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롭게 깨달았다. 그것은 구원자체를 낮게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은혜만을 강조하여, 구원받은 목적과 사명을 생각치 못하는 요즘, 다시한번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때, 한명 한명의 성도가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그리고, 무엇을 위해 구원해주셨는가를 알게되는 것은 아닐런지… 끝으로 아내가 나에게 남긴 유서라고 할만한 편지를 사족같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정말로 하루만에 끝나버렸습니다. 앞으로 둘이서 여러 곳을 가보고 싶었고, 여러 가지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쩔수가 없네요. 주님이 여기까지라고 하셨으니까요. 미안해요. 길었던 것같으면서 짧았던 30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군요. 언제나 비평가로 철저하게 일관하게 되었던 것 용서해 주세요. 지금까지 참 고마웠습니다. 오카모토형제님의 아내였던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즐거웠는지요. 언제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앞으로도 수없이 저를 붙잡아 주시겠지요. 고마워요. 아무것도 돌려드리지 못했어요. 재림까지 이제 얼마남지 않았지요. 제 몫까지 한층 높은 헌신을. 너무 무리말고, 힘내세요. 제 남편은 엄청난 분입니다. 놀라운 분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존경합니다. 지금까지 좀처럼 드릴 수 없었던 진실의 말입니다. 카즈요(和代)”